[기고문] 시련받은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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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시련받은 삶의 가치
  • 입력 : 2020. 10.08(목) 10:33
  • 뉴스핑
이정선(광주교대 교수, 전 총장)
[뉴스핑/뉴스핑] 나훈아의 테스형이 세간의 관심거리다. '너 자신을 알라'는 노랫가사 때문이다. 근데 테스형의 어록 중에서 코로나로 인한 힘든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아마도 '시련받은 삶의 가치'가 가장 적합한 명언이 아닐까 한다. 오래전에 썼던 나의 글의 일부를 재구성해 보았다.

‘시련 받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unexamed life is not worth living) 말은 내가 힘들고 자존심이 상할 때마다 인생의 등대불로 삼았던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본시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혔을 당시 제자들이 찾아와서 도망가기를 권유했을 때 대답으로 준 말로도 유명하다. 그 후 보통 사람인 우리들도 때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아니면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수모를 겪을 때면 삶의 교훈으로 삼곤 했다.

‘세상에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마크 투웨인의 말이다. 아무리 지루한 장마도, 사납게 불어 닥치는 폭풍우도 언젠가는 그친다. 세상에 이름 남긴 사람들은 그러한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아니던가!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베토벤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산 사람이다. 그냥 삶을 산 사람이 아니라 역경 속에서 위대한 예술과 지식을 창조한 사람이다. 음악가에게 청력이란 가장 중요한 도구일진데, 그러한 청력을 상실했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작곡의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에 세상은 위대한 음악과 한 사람의 음악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가까이에서 늘 듣던 그래서 조금은 상식이 되어 버린 현대 정주영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는 교훈 역시 우리가 어려운 때마다 되새겨 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명언이다.

이들은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인고의 눈물을 흘렸겠는가? 사람은 불행할 때, 좌절될 때 행복의 순간이 언젠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결코 생각하지 못한다. 나만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 불행은 끝없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고 최악의 경우 극단적 선택도 불사한다.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끓고 고통과 좌절을 이겨낸 삶은 그래서 더 향기롭다. 인내와 연단을 이겨낸 삶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탄성을 지르는 것은 진흙탕 속의 연꽃이나 가장 추운 겨울을 먹고 자라는 이른 봄의 푸르른 보리밭의 생명력, 그리고 추운 바람 속에서도 어김없이 개화하는 봄꽃들이 그만큼 쉽지 않는 역경을 이겨내고 나왔기 때문이다. 순금이 비싼 이유는 불순물을 정제하기 위하여 뜨거운 불 속에서 스무번도 넘게 자기 몸을 불 태우며 담금질 했기 때문이다.

돌아 놓고 보면 우리 삶은 행복할 때보다 불행할 때, 편안할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최소한 한 두가지 풀어야 할 화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결국 삶은 그것을 받아들여 견디고 이겨내는 끊임없는 자기공부이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당당하되, 현실을 직시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무던히 참아내는 그러한 공부를 통해 내면의 힘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배우는 학생 때부터 고통과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서 싸우는 그런 공부를 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역경이 오더라도 시련 받은 삶의 참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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